제22장: 새벽의 의지
붉은 하늘이 물러가고, 새로운 빛이 세상을 감쌌다. 아렌이 심은 벨루미아의 자리는 이제 작고 빛나는 새싹이 되어, 따스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땅은 다시 숨을 쉬고 있었고, 무너졌던 균열도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세 사람은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곳은 더 이상 신들의 세계도, 인간의 세계도 아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있었다.
“모든 게 정말 끝난 걸까?” 레나가 조용히 물었다.
아렌은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 이제 시작이야.”
그가 말한 순간, 그들 앞에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누군가 만든 것이 아닌, 세상 그 자체가 응답하듯 열어준 길이었다. 잔잔한 물결처럼 굽이치는 들판 위로, 꽃들이 줄지어 피어났고, 바람은 부드럽게 그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칼릭은 한 걸음 내디뎠다. “이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우리가 써 내려갈 이야기겠지.” 아렌이 미소 지었다.
***
며칠 후. 그들은 작은 언덕 위에 머물렀다. 높지 않은 언덕이었지만, 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거대하고도 새로운 세계였다. 어디에도 신의 흔적은 없었다. 대신, 생명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자연은 스스로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곳을… 우리가 지킬 수 있을까?” 레나가 물었다.
아렌은 생각에 잠긴 듯 대답했다. “우리가 신을 몰아낸 게 아니라, 의지로서의 신을 넘은 거야. 이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해.”
그는 벨루미아의 새싹을 바라보았다. 꽃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주위엔 다른 생명들이 함께 피어나기 시작했고, 그들 각각이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셋은 모닥불을 피우고 나란히 앉았다. 별들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신들이 진짜 존재했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겠지.” 칼릭이 말했다.
“믿음은 기억 속에서 시작되는 거야.” 레나가 대답했다. “우리가 기억하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사라지지 않아.”
아렌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야.”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불안이 아닌 평화였다.
***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직전. 아렌은 홀로 언덕에 올랐다. 하늘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경계에 있었고, 들판은 이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나는 너희를 따르지 않겠다. 너희의 계율도, 법도. 나는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길을 가겠다.”
그 말과 함께, 하늘 저편에서 아련한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태양이었지만, 이전보다 더 부드럽고 생명력 있는 빛이었다.
그 빛 아래에서, 새벽은 완전히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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