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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계율을 깨다》

제20장: 금기의 중심

by digital-nagane 2025. 3. 23.

제20장: 금기의 중심



아렌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레나와 칼릭도 그 뒤를 따랐다. 빛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그들 앞에는 고요하고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은 하나의 공간이라기보단, 신들의 상념이 흐르는 심연 같았다. 하늘도, 땅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은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흐름은 살아 있는 심장처럼 박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섬처럼 떠 있는 고대의 구조물이 보였다. 그곳은 이 세계의 중심, 신들의 심장부라 불릴 만한 장소였다.

“이곳이…” 아렌이 나직이 말했다. “신들의 본질이 머무는 곳.”

그들은 조심스럽게 중심으로 향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반응하듯 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들이 구조물에 도착했을 때, 섬의 중심에 떠 있는 **거대한 수정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끝없이 반복되는 형상들이 보였다. 탄생과 소멸, 전쟁과 평화, 인간과 신의 대화, 배신과 구원—세계의 모든 흐름이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신들의 기록?” 레나가 숨을 삼켰다.

“아니,” 아렌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장치야. 신들이 현실을 설계하는 핵심.”

그때, 수정 구체가 강하게 빛나며, 그들 앞에 또 하나의 형상이 떠올랐다. 이번엔 낯선 모습이었다. 황금의 갑옷을 입은 신과 같은 존재—그러나 그 눈빛은 인간과 닮아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을 환영한다, 인간.”

그 존재는 부드럽지만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여기까지 도달함으로써, 신들의 세계는 불안정해졌다.”

아렌은 단호하게 응시했다. “우린 진실을 알기 위해 왔다. 그리고… 이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왜 인간은 신들의 계율 아래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는지.”

존재는 잠시 침묵하다가, 구체를 가리켰다. “이 수정은 모든 것을 재구성할 수 있다. 세계의 구조, 시간의 흐름, 생명의 순환까지.”

“그렇다면,” 칼릭이 나섰다. “우리도 이걸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인가?”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가는 따른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신들과 같은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너는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렌은 벨루미아를 바라보았다. 꽃은 천천히 빛을 내며 구체를 향해 손짓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이 그 순간이라 말하는 듯.

“우리의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아렌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책임을 지겠다.”

그가 손을 구체에 뻗자, 강렬한 빛이 공간 전체를 휘감았다. 심장의 맥동이 요동치듯 커지며, 새로운 현실이 태동하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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