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걷기 전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관계 속을 지나간다.
누군가를 만나고, 바라보고, 말을 건다.
하지만 그 많은 순간 속에서 나는 몇 번이나 ‘진짜 나’였을까?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너’를 정말로 ‘너’로 받아들였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는, 관계를 말하면서도 ‘존재’를 말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관계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 존재의 방식이 된다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오래된 질문 하나와 다시 마주했다.
"나와 너, 우리는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2. 마음에 남은 문장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
– 마르틴 부버
이 문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한참 동안, '만남'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만남은 인사, 대화, 혹은 우연일 때가 많다.
그러나 부버에게 있어 만남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그는 인간의 관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눈다.
**“나-너(I-Thou)”**와 “나-그것(I-It)”.
‘나-너’는 전인격적인 만남이다.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고, 판단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너’로 존재하게 하는 관계다.
반면 ‘나-그것’은 내가 타인을 목적이나 수단, 정보, 기능으로 대하는 관계다.
효율, 거리, 객관성… 그 모든 것이 작동하는 세상의 기본 모드다.
그리고 부버는 말한다.
우리는 점점 더 ‘나-그것’의 세계 속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3. 책과 나의 대화
나는 이 구분을 통해 내 일상 대부분이 ‘나-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을 ‘과제 수행자’로, 동료를 ‘일의 협력자’로,
때로는 사랑하는 이조차 ‘내 감정을 충족시켜줄 사람’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그 누구도 고의로 대상화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부버는 ‘너’를 만나는 순간, 내가 진짜 ‘나’가 된다고 말한다.
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할 때, 나 역시 존재로서 정직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거울이다.
그 너의 눈 안에서 나는 나의 깊이를 본다.
4. 나와 너, 그리고 오늘의 삶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문득, 말보다 침묵으로 전해지는 관계가 더 깊을 수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떤 눈빛, 어떤 함께 있음, 어떤 가만한 존재.
그 순간들이야말로 ‘나-너’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버의 철학은 결국 관계의 윤리를 말한다.
단순한 친절이나 배려가 아니라, 존재를 존재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그 태도가 나의 존재를 더 투명하게 만든다는 통찰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난다’는 말을 좀 더 신중하게 쓰게 될 것 같다.
그것이 단지 얼굴을 보는 일이 아니라, 존재가 교차하는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5. 다음 걸음을 준비하며
《나와 너》는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철학적 언어 속에 담긴 울림은 오래도록 마음 안에 머물며
삶의 태도와 시선을 바꾸는 힘이 있다.
책장을 덮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 나는, 누구를 ‘너’로 만났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너’로 받아들여졌는가?
이 질문을 가지고, 나는 다음 책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그곳에서도 또 다른 ‘나’를 마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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