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율을 깨다》

제5장: 서쪽을 향하여

digital-nagane 2025. 3. 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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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서쪽을 향하여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숲을 스치며 나뭇잎을 흔들었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아렌의 귓가를 스쳤다. 그는 여전히 몸에 남아 있는 피로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남자의 흔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불꽃조차도 재만 남긴 채 꺼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남긴 말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_“서쪽의 황금 신전을 찾아라. 네가 찾는 진실이 거기에 있다.”_

아렌은 벨루미아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꽃은 여전히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마치 그 스스로 길을 알려주려는 듯 잔잔한 파동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결심했다.

‘서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한 위치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황금 신전이라는 이름만으로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왕국의 지도에 ‘황금 신전’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들과 신전 세력들은 신들의 성소를 철저히 통제하며, 외부인들에게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_그렇다면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_

아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숲을 빠져나왔다. 다행히도 아직 추적자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오래 머무르면 다시 쫓길 것이 분명했다.

***

동이 트기 전, 아렌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숲을 벗어난 들판 너머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왕국의 주요 도로에서 벗어나 있었고, 귀족들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작은 신전이 세워져 있었고, 하얀 옷을 입은 사제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기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아렌은 신전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귀족들에게 쫓기는 몸으로 성급하게 움직였다가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금 신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신전 관계자를 접촉해야 했다.

그는 천천히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단출했지만 신성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신전 한가운데에는 사제 한 명이 초를 밝히고 있었다.

아렌은 조용히 다가가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사제가 고개를 들었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렌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렌은 잠시 고민했다. 신전에 대한 정보를 대놓고 묻기에는 위험했다. 그는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신들의 축복을 받은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성소 같은 곳 말입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사제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얼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스쳤다.

"왜 그런 곳을 찾으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렌은 순간적으로 적절한 대답을 고민했다. 하지만 사제의 태도가 경계심을 품기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신들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서요."

사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초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귀족들의 감시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그들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신전에 대해 너무 많이 묻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렌은 그의 말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이 사제는 뭔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제는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만약 진심으로 찾고 계신다면, 서쪽 국경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는… 과거 신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가 있지요."

아렌은 눈을 빛냈다.

"그곳이 황금 신전입니까?"

사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용히 초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을 찾고 있다면, 지도 한 장이 필요하겠군요."

그는 안쪽으로 걸어가더니, 낡은 두루마리를 가져와 아렌에게 건넸다. 아렌은 그것을 펼쳐보았다. 지도에는 서쪽 국경 너머의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으며, 한곳에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을 찾으십시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신들의 성소는 단순한 전설이 아닙니다. 그곳을 찾으려는 자들은 많지만, 돌아오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사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렌의 마음은 확고했다.

‘나는 반드시 그곳을 찾아야 한다.’

아렌은 지도를 품에 넣고 조용히 신전을 떠났다. 이제, 황금 신전을 향한 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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