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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계율을 깨다》

제4장: 추방된 자의 경고

by digital-nagane 2025. 3. 19.

제4장: 추방된 자의 경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숲속, 아렌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몸이 차가운 땅에 눕혀 있었고, 머리가 무겁게 짓눌리는 듯했다. 귓가에는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는군."

아렌은 힘겹게 눈을 떴다. 희미한 불빛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온몸이 쑤시고 힘이 빠져 있었다. 눈앞에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얼굴에는 깊은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치는 솜씨는 형편없군."

아렌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숲속에서 도망치다 바위에 걸려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던 것뿐이었다.

"누구…지?"

남자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나는 귀족들에게 쫓기는 자다. 네놈처럼."

그 말에 아렌은 순간 긴장했다. 이 남자는 누구이며, 왜 자신을 구한 걸까? 그리고 귀족들에게 쫓기는 자라면, 같은 편인가? 아니면 더 위험한 존재일까?

"도와준 건 고맙지만, 나는—"

"너는 그 꽃을 가지고 있지."

남자의 시선이 아렌의 손에 쥐어진 벨루미아를 향했다. 여전히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보랏빛 꽃.

"이걸… 어떻게 아는 거지?"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너만 그 꽃을 쫓고 있다고 생각했나? 벨루미아는 단순한 전설 속 꽃이 아니다. 그것은 신들의 흔적이자, 동시에 금기의 증거다."

아렌은 남자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그는 단순히 이 꽃이 신들의 축복을 받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기의 증거’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귀족들이 널 죽이려 하는 이유도 그 꽃 때문이겠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용히 나무 장작을 하나 더 던지며 불을 살렸다. 붉은 불꽃이 그의 얼굴을 밝혔고, 그제야 아렌은 남자의 몸에 깊은 상처가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귀족들은 신들의 계율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그 계율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신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쥐고, 왕국을 장악하려 하지. 그리고 벨루미아… 그 꽃은 그들의 거짓을 증명할 증거지."

아렌은 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뜻이야? 신들의 축복을 받은 꽃이라면서?"

남자는 아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시험하는 듯했다.

"벨루미아는 신들의 축복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신들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들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증거거든."

아렌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신들이 불완전하다는 뜻인가? 그리고 벨루미아가 그것을 증명한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만약 네가 살아남고 싶다면, 그리고 네가 진실을 알고 싶다면, 서쪽의 황금 신전을 찾아라. 거기에 네가 원하는 답이 있을 거다. 하지만 조심해라, 너만 그곳을 찾으려는 게 아니니까."

아렌은 남자의 말에 긴장했다. 자신을 쫓는 건 단순히 귀족들뿐만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넌? 넌 왜 도망치는 거지?"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웃었다.

"나는 이미 한 번 실패했거든. 네가 나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지."

그 말과 함께 그는 다시 후드를 눌러쓰고 몸을 돌렸다. 불길이 잦아들며 그의 형체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아렌은 여전히 몸이 무거웠지만,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서쪽의 황금 신전. 그곳에, 신들의 비밀이 있다.


아렌은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머리가 띵하고 아팠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신들의 약점이 벨루미아에 있다…?’

그가 숲속 폐허에서 본 의식, 귀족들의 음모,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단서들.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지는 듯했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벨루미아가 흔들리며, 더욱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이 마치 그의 갈 길을 인도하는 듯했다.

“서쪽의 황금 신전… 반드시 찾아내겠어.”

아렌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이 여정이 단순한 복수를 넘어, 신들의 계율을 깨뜨릴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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