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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계율을 깨다23

제25장. 잊혀진 진실의 방 제25장. 잊혀진 진실의 방  모래의 수호자가 마지막 포효와 함께 사라진 뒤, 방 안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아렌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레나와 칼릭 역시 온몸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빛났다. 전투의 여운은 길게 남았고, 그들의 발밑에는 붕괴된 모래 조형물의 흔적이 흩어져 있었다. “끝난 걸까?” 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대답 대신, 수호자가 있던 제단 뒤편의 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요한 진동과 함께 감춰져 있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는 어둠으로 가득했고, 빛 한 줄기도 스며들지 않았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봉인된 세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아렌은 벨루미아가 담긴 작은 유리관을 조심스레 꺼내어 확인했다. 보랏빛 꽃잎은 .. 2025. 3. 28.
제24장: 회색의 경계 제24장: 회색의 경계 길은 점점 낯설어졌다. 초록빛 들판이 점차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안개가 자욱한 회색의 숲이었다. 나무들은 빛을 삼키는 듯 어두웠고, 땅은 부드럽지만 어디론가 꺼져버릴 듯한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곳은… 살아있는 것 같아.” 레나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조용하지만, 기운이 흐르고 있어. 이 숲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군.” 칼릭도 검을 느슨히 쥐며 조심했다. 아렌은 벨루미아의 씨앗을 품에 안고 천천히 걸었다. 꽃은 이미 사라졌지만, 남은 씨앗은 아직도 따스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누군가의 신탁이 아닌, 자신들의 감각과 믿음으로만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숲속을 걷던 중, 그들은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멈춰 섰다. 나무의 껍질에는 손으로 새긴 듯한.. 2025. 3. 28.
제23장: 먼 기억의 바람 제23장: 먼 기억의 바람 새벽의 햇살이 들판을 따스하게 감쌌다.이슬이 맺힌 풀잎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천천히 깨어나는 세상을 알리고 있었다.아렌은 언덕 아래로 내려와, 레나와 칼릭 곁에 섰다.모닥불은 이미 꺼졌고, 그 위엔 따끈한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레나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우리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되겠지.” 아렌이 대답했다.그들은 짐을 정리하고, 새로 돋아난 작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길은 숲과 개울을 지나, 오래된 돌다리로 이어졌다.다리 너머에는 오래전 버려진 듯한 폐허가 있었는데, 돌담엔 여전히 희미한 문양이 남아 있었다. “여긴…” 칼릭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중얼거렸다.“예전엔 사제들이 머물던 곳 같군.”그들은 폐허 안으로 .. 2025. 3. 28.
제21장: 신이 없는 세계 제21장: 신이 없는 세계아렌의 손끝이 수정 구체에 닿는 순간, 빛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눈을 감았지만,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 무수한 소리들이 동시에 울리는 듯한 착란 속에서, 그는 천천히 무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그가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심장의 방이 아니었다. 평범해 보이는 들판. 부드러운 바람과 새소리. 하늘엔 구름이 떠 있고, 멀리 산과 강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여긴… 어디지?”곁을 둘러보니, 레나와 칼릭도 있었다. 그들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다시 돌아온 건가?” 레나가 물었다.하지만 뭔가 달랐다. 이곳은 현실 같았지만, 진짜 현실은 아닌 듯한 어색한 조화가 느껴졌다. 모든 것은 너무 완벽했고, 지나치게 평.. 2025. 3. 23.
제20장: 금기의 중심 제20장: 금기의 중심아렌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레나와 칼릭도 그 뒤를 따랐다. 빛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그들 앞에는 고요하고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그곳은 하나의 공간이라기보단, 신들의 상념이 흐르는 심연 같았다. 하늘도, 땅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은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흐름은 살아 있는 심장처럼 박동을 반복하고 있었다.중앙에는 섬처럼 떠 있는 고대의 구조물이 보였다. 그곳은 이 세계의 중심, 신들의 심장부라 불릴 만한 장소였다.“이곳이…” 아렌이 나직이 말했다. “신들의 본질이 머무는 곳.”그들은 조심스럽게 중심으로 향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반응하듯 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들이 구조물에 도착했을 때, 섬의 중심에 떠 .. 2025. 3. 23.
제19장: 심장의 기억 제19장: 심장의 기억황금의 문을 통과하자, 아렌과 동료들은 완전히 다른 공간에 들어섰다. 공기조차 현실과는 다른 질감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 주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별빛의 강이 부유하고 있었다. 중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몸은 가볍게 떠오르는 듯했다.“여긴… 현실이 아니야.” 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이건 신들의 내면, 아니면 그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겠지.” 칼릭이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아렌은 벨루미아를 들여다보았다. 꽃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전처럼 강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이 공간을 인식하고 있다는 듯 은은한 리듬으로 빛을 깜박였다.그 순간, 별빛의 강이 갈라지며 하나의 섬이 떠올랐다. 그 위에는 고대의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제단 중심에는 낯익은 형상이 떠 있..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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