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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감성8

[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⑦ – 연꽃은 흙을 탓하지 않는다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걷다 멈춘 자리였다.물이 잔잔히 흔들리고, 바람이 연잎을 스쳐 지나가며 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그 가운데, 조용히 피어 있는 연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흙탕물 위였다.탁한 물빛과 녹조가 섞인 물 위에서 연꽃은 너무도 고요하고 깨끗하게 피어 있었다.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어쩌면, 그 연꽃은 내가 요즘 가장 닮고 싶었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결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우리는 종종 말한다.“환경이 나를 만든다.”하지만 연꽃은 말하는 듯했다.“나는 내 안에서 나를 다시 빚는다.”요즘 나는 자주 지쳤다.세상이 던지는 말들, 감당해야 할 일들, 의도치 않게 얽히는 오해들 속에서 내 마음에도 진흙이 묻은 것 같았다.그.. 2025. 4. 1.
[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⑥ – 바람을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처럼 가을이었다.해는 짧아졌고, 바람은 길어졌다.어느 날, 익숙한 길가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코스모스였다.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그 앞에 섰다.진한 보라색, 연분홍, 희미한 하양이 뒤섞여 길게 이어진 그 풍경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여정 같기도 했고 마치 어떤 기억의 조각 같기도 했다.코스모스는 마치 말을 거는 것 같았다."나는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흔들리되 부러지지 않고, 흩날리되 사라지지 않아."그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나는 요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누군가의 말 한마디, 끝나지 않은 걱정,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삶의 방향…그 모든 불안함 속에서 나는 자꾸 중심을 잃곤 했다.그런데, 코스모스는 흔들리면서도 살아 있었다.오히려 바람이 없.. 2025. 4. 1.
[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⑤ – 장미는 왜 가시를 품었을까 어느 날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장미 한 송이를 바라보다 생각했다.왜 이렇게 예쁜 꽃이, 가시를 품고 있을까.장미는 사랑의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왜 늘 두려움과 함께 오는 걸까.그 꽃은 내가 직접 산 것도, 누군가에게 받은 것도 아니었다.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집어든 한 송이.계산대 위에 올려놓을 땐 별 생각이 없었지만,집에 돌아와 꽃병에 꽂은 후부터 그 장미를 자꾸 바라보게 되었다.붉은 꽃잎은 정교하고 매끄러웠다.겹겹이 말린 곡선들이 부드럽게 겹쳐져, 한 송이 안에 우아함과 생명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하지만 줄기를 따라 손가락을 대자, 조심스레 숨어 있던 가시에 손끝이 찔렸다.살짝 따끔했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더 깊어졌다.완벽하게 아름다운 장미도, 그 안에 방어 본능처럼.. 2025. 4. 1.
[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④ – 해를 바라보는 마음처럼 여름의 한복판, 햇살이 세차게 내리쬐던 날이었다.길가를 달리던 차 안에서 우연히 해바라기 밭을 마주쳤다.노랗게 물든 들판, 줄지어 선 해바라기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마치 누군가의 지휘에 따라 정렬된 것처럼, 단정하고 묵직한 아름다움이었다.나는 차를 멈추고, 조용히 해바라기 밭으로 걸어 들어갔다.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조차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해바라기들은 말이 없었다.그저 묵묵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순간, 마음 한 켠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해바라기는 늘 밝고 환한 이미지로 기억된다.아이들 그림책 속에서도, 길가 조형물에서도, 늘 웃고 있는 얼굴로 그려진다.하지만 오늘 내가 마주한 해바라기들은 웃고 있지 않았다.. 2025. 4. 1.
[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③ – 수선화 앞에서 나를 마주하다 길가에 수선화가 피었다.누군가 가꾼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풍경도 아니었다.그저 조용한 숲길 한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담담해 보였다.나는 조용히 그 앞에 앉았다.수선화는 흔히 '자기애'를 상징한다고 한다.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한 이야기.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청년이 수선화가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하지만 나는 그 신화보다, 수선화 그 자체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다.자기애라는 말은 어쩌면 오해받기 쉬운 말이다.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하지만 수선화 앞에서 나는 그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수선화는 화려하지 않다.튤립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장미처럼 풍성하지도 않다.. 2025. 4. 1.
[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② – 바람 따라 기울던 튤립처럼 튤립은 특별한 향기가 없다.장미처럼 짙은 유혹도 없고, 벚꽃처럼 눈처럼 흩날리지도 않는다.하지만 나는 매년 봄이 오면, 어김없이 튤립을 보러 간다.튤립은 봄의 중턱에서 가장 또렷한 색으로 피어난다.그 곧고 단단한 줄기 위에, 단정한 꽃잎을 올린 채 바람을 맞는다.누구에게도 과하게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다만 자기 자리에 충실하게 선다.어느 해 봄날, 나는 작은 튤립 정원에 있었다.사람들이 많은 곳은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 끝, 조용한 마을회관 뒤편.튜립들이 한 방향으로 기울어 피어 있었다.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다.그 기울어진 모습이 꼭, 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나는 그 해 봄, 꽤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결정을 내려야 했고, 떠나야 했고, 보내야 할 것이 있었다.하지만 마음은 쉽게 ..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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