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율을 깨다》

제44장. 운명과 불꽃

digital-nagane 2025. 4. 18. 19:55

 

벨루미아의 네 번째 꽃잎이 피어난 순간, 에테리안의 의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적에 휩싸였다.

마법석으로 둘러싸인 홀 안에 순백의 빛이 잔잔히 퍼졌고, 기억의 파편들은 여전히 공중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한 빛은 곧 갈등의 불꽃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

젊은 원로 중 하나인 바르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진실은 혼란을 부르고, 혼란은 질서를 파괴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왔다. 이건 반역이다!”

“반역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마델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외면했던 것을, 지금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다시 세상에 전하고 있어요.”

그러나 갈등은 순식간에 양분되었다.

원로 12명 중 7명은 아렌의 진실을 지지했지만, 나머지 5명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기억이 마법적 조작일 수 있다고 주장했고, 무엇보다 아란티우스라는 이름 자체가 금기라고 강조했다.

아렌은 조용히 벨루미아를 내려다보았다.

네 송이의 꽃잎은 각기 다른 빛으로 피어 있었고, 그 중심에서 퍼져나오는 에너지는 마치 세계의 심장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제 뜻이 아닙니다.”

아렌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기억의 흐름이고, 신과 인간이 나누었던 약속의 울림이에요.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더 이상 숨겨질 수는 없습니다.”

그 순간, 홀 밖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의회 외곽 경비탑에서 화염 마법 반응!”

실렌이 외치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무장 마법사들이 의회를 포위했습니다! 반대파 세력과 외부의 군사적 연계가 확인됩니다!”

레나는 즉시 검을 뽑았고, 칼릭은 아렌 앞으로 몸을 옮겼다.

마델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결국… 진실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불타는 건 권력이지요.”

홀은 곧 전장의 중심이 되었다.

지지파 원로들은 아렌 일행과 함께 의회 제단을 중심으로 진형을 짰고, 반대파는 이미 외부 병력과 연락을 취해 마법적 봉쇄를 시도하고 있었다.

“진실을 막기 위해 성소를 무기로 삼다니…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질서가 아니라 권력이었군.”

아렌은 낮게 말했다.

그는 벨루미아를 쥐었다.

이번엔 다섯 번째 파동이 일었다.

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퍼졌고, 홀 천장에 고대의 룬이 나타났다.

그 룬은 방어의 인장이자, 고대의 보호 마법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벰 카일 아르-레온…”

아렌은 속삭이듯 주문을 읊었다.

룬과 벨루미아가 공명하며 진실의 결계가 홀을 덮었다.

공격은 결계를 뚫지 못했다.

오히려 진실의 기억에 잠식된 일부 병사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마델은 조용히 아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새로운 서약이 태어나는 장면입니다.”

전투는 곧 진압되었다.

반대파 세력은 진실의 파동에 당황했고, 벨루미아는 그들에게 기억의 일부를 전하며 무력화를 이끌어냈다.

마법은 파괴가 아닌, 설득이 되었다.

아렌은 마지막으로 남은 반대파 원로 바르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우리에게 진실을 강요하려는가?”

바르노가 외쳤다.

“아니요.”

아렌은 조용히 대답했다.

“진실은 선택입니다.

강요가 아닌 공명으로 이뤄져야 하죠.”

그리고 그는 벨루미아를 내밀었다.

바르노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빛은… 어쩌면 나조차 원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에테리안 의회는 그날 이후, 아렌과 함께 ‘진실 연맹’의 첫 중심 도시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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