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린벨 성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해 보였지만, 내부에는 묵직한 전운이 깔려 있었다.
성벽 위의 횃불은 유난히 거세게 타올랐고, 창문마다 감시의 눈이 번뜩였다.
고요함은 마치 폭풍 전의 정적 같았고, 그 정적 속에서 움직이는 어둠은 이미 성 안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아렌은 벨루미아를 들고 린벨 백작의 개인 병영 지하에 마련된 작전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레나와 칼릭, 이안 경, 그리고 백작의 직속 기사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지도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이들은 모두 잠 못 드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지아드가 남긴 흔적은 예상보다 깊습니다.”
라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미 며칠 전부터 몇몇 병사들을 회유했고, 마법 통신을 통해 외부와도 연결해온 듯합니다.
성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우리 병력은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다.”
백작은 단호히 말했다.
“그가 린벨을 장악하기 전에, 먼저 선을 그어야 한다. 성의 명령 체계를 재정비하고, 반란 세력은 봉쇄한다.”
“문제는 내부에 있다는 겁니다.”
레나가 지적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옷을 입고 있고, 같은 깃발 아래 있지만, 이미 마음은 다른 데 있죠. 누가 적인지 명확히 하기 전엔 피할 수 없는 충돌이 벌어질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아렌이 말했다.
그는 천천히 벨루미아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꽃잎은 밤의 고요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고, 빛이 맺히는 곳마다 지도 위에 점처럼 내려앉았다.
그 순간, 벨루미아가 갑작스럽게 강하게 반응했다.
짧은 섬광과 함께 꽃에서 일렁이는 빛줄기가 테이블 중앙에 모였고, 그것은 마치 하나의 형태를 이루듯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이안 경이 숨을 죽였다.
빛은 점점 선명해졌고, 이내 린벨 성의 입체 모형이 공중에 떠올랐다.
각각의 구역은 색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특정 구역은 붉게 깜박이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투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정보, 성 안에서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일종의 ‘감응 지도’였다.
“벨루미아가… 성 전체의 마력을 감지하고 있어요.”
레나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건 곧… 지아드의 마력도 추적 가능하다는 뜻이죠.”
아렌은 벨루미아의 빛이 특정 지역—성의 북동 회랑 근처에서 급격히 진동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저기다. 저곳에서 지금… 뭔가 시작되고 있어.”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전실 위층에서 폭음이 터졌다.
성이 흔들렸고, 먼지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경비병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반란입니다! 북동 회랑에서 폭발이 발생했고, 병사 일부가 무기를 들고 통제 구역을 점령했습니다! 지아드 세력입니다!”
칼릭이 곧장 일어섰다.
“이제 시작이군.”
백작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작전실 인원은 모두 동원하라! 아렌은 나와 함께 이동한다. 벨루미아를 지켜야 한다. 이건 단순한 상징이 아닌, 지금 이 순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렌은 벨루미아를 가슴에 품고, 백작과 함께 지하 통로를 통해 북동 회랑으로 향했다.
그 길은 오래된 비밀 통로였고, 적들이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경로였다.
회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아드의 세력은 성 위병들 일부를 매수해 입구를 장악했고, 불길은 창문을 통해 번지고 있었다.
“목표는 벨루미아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 순간, 아렌의 손안에서 벨루미아가 강하게 빛났다.
보랏빛 파동이 그의 몸을 감싸더니, 마치 보호막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적들의 공격이 그 빛 앞에서 굴절되기 시작했다.
“이건…”
아렌이 당황한 듯 손을 보았다.
“이건… 벨루미아가… 날 지키고 있어?”
“아렌!”
레나가 외쳤다.
“그 빛을 더 확장해봐! 벨루미아가 지금 각성하고 있어!”
아렌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꽃의 중심에서 파동이 퍼졌고, 그것은 마치 진실의 울림처럼 회랑 전체에 메아리쳤다.
빛이 퍼지는 순간, 적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고, 그 일부는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정신 조작?”
라움이 속삭였다.
“아니… 진실의 기억이… 그들에게 스며들고 있어.”
적의 일부는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았고, 그 틈을 타 아렌 일행은 중심부를 회복했다.
하지만 지아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백작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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