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율을 깨다》

제33장. 린벨로 향하는 길

digital-nagane 2025. 4. 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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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완전히 걷히기도 전에 아렌 일행은 엘드란을 떠났다.

도시는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검은 하늘 아래 바람은 차가웠다.

벨루미아는 아렌의 옷 속에서 조용히 빛을 머금고 있었다.

작고 은은한 그 빛은 이제 그들에게 단순한 길잡이를 넘어, 신의 증표이자 그들 여정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린벨까지는 말 위로 이틀 거리입니다.”

이안 경이 말했다.

그와 함께한 경비대원 두 명이 동행했고, 라움도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길은 단순한 외교적 방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을 향한 설득의 여정이자, 어쩌면 누군가의 신념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될 시험이었다.

 

첫날은 평온했다.

산등성이를 따라 조용히 이어지는 숲길은 적막했지만, 긴장감은 여전했다.

칼릭은 끊임없이 주위를 경계했고, 레나는 지도와 별자리를 번갈아 확인하며 경로를 점검했다.

마치 이 여정 전체가 하나의 정밀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둘째 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낯선 연기가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피어올랐다.

 

“저건…” 레나가 안장을 일으켜 자세를 세웠다.

“연기다. 위치로 보면… 린벨 외곽 신전이 있을 자리야.”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이안 경은 곧장 고삐를 잡고 속도를 높였다.

 

“늦을 수는 없어. 서둘러!”

 

말발굽 소리가 들판 위로 메아리쳤고, 곧 그들은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신전 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엔 이미 모든 것이 타버린 후였다.

기둥은 무너졌고, 제단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곳이 한때 신을 기리던 공간이었다는 흔적은, 오직 바닥에 남은 불탄 상징들뿐이었다.

 

“이건 단순한 방화가 아니야.” 라움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장소가 가진 의미를 지우려 한 거야.”

 

아렌은 그 잿더미 속에 발을 들였다.

벨루미아가 그의 손 안에서 약하게 떨렸다.

그는 불탄 돌기둥 옆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빛.

 

검게 타버린 제단의 틈새에서, 미약하지만 명확한 보랏빛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벨루미아와 닮은 빛이었고, 그 안에는 문양 하나가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삼각을 중심으로 나선이 얽힌 고대의 상징.

 

“아렌.” 레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 문양… 신전에서 봤던 기억과 같아.”

“이건 흔적이야.” 아렌이 속삭였다.

“누군가 이곳에 진실을 남긴 거야. 지워지지 않도록, 신의 꽃이 그 흔적을 지켜보도록…”

 

이안 경이 다가와 잿더미를 살폈다.

“린벨 백작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모릅니다.” 라움이 말했다.

“하지만 이 불길은 분명 경고입니다.

누군가 진실을 알릴 준비가 되기도 전에, 그것을 묻으려는 자들이 먼저 움직였다는 뜻이죠.”

그들은 무너진 신전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불길은 꺼졌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는 여전히 짙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렌은 결심했다.

 

“린벨 백작에게, 이 흔적을 보여줘야 해요. 그는 이 진실을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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