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봄날이었다.
카메라 하나 들고, 아무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동네 뒷길을 걷고 있었다.
바람은 겨우내 얼었던 공기를 조금씩 데우고 있었고, 햇살은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렇게 마음도 길도 나른해질 무렵, 발길이 멈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골목 모퉁이에 작은 들꽃이 피어 있었다.
이름을 알지 못했다.
흙 사이를 비집고 나온 보라색 꽃 한 송이.
흙먼지를 묻힌 채 피어있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사진을 찍으려다 멈췄다.
이건 그냥 눈으로 담아야 할 것 같았다.
꽃은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마치 그 꽃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 여기 있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대단한 이유 없이, 그냥 피어 있는 존재.
그게 꽃이었다.
그리고, 문득 나 자신이 떠올랐다.
나도 요즘 그런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꽃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길가에 핀 작은 꽃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종종 대단한 풍경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오늘, 가장 깊은 울림은 바로 여기, 골목길 모퉁이에서 찾아왔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같은 종류의 꽃이 몇 송이 더 피어 있었다.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꽃잎들.
이름은 몰라도, 존재는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모두,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피어나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나이기 때문에’ 피어나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작은 꽃 한 송이에게 배웠다.
흙을 딛고 피어난다는 것.
기다림 없이 피고, 미련 없이 진다는 것.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계절을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너무 자주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꽃은 그렇지 않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 조용히, 그리고 우아하게 존재할 뿐이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그 길을 걸었다.
그 꽃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오늘도 피어줘서 고마워.”
나그네의 시선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꽃 한 송이 앞에 멈춘 마음, 그것도 여행이다.
사소한 풍경이, 잊고 있던 마음의 언어를 깨워준다.
당신의 하루에도 그런 꽃 한 송이가 피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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