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책으로 걷는 시간

《페스트》 –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digital-nagane 2025. 6. 3. 21:30

📚 책으로 걷는 시간


1. 걷기 전에: 카뮈와 『페스트』의 배경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라는 철학적 개념을 문학적 언어로 풀어낸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페스트』는 1947년에 발표된 장편소설로, 북아프리카의 가상 도시 오랑에 발생한 전염병 ‘페스트’를 배경으로,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이 위기에 대응하는지를 다층적으로 묘사합니다.

단순한 재난소설로 읽히기 쉬우나, 이 소설은 사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저항 전체주의에 대한 은유, 그리고 무엇보다 부조리한 삶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읽힙니다.


2. 도시 오랑에 닥친 침묵의 공포

이야기는 어느 날, 평범하던 오랑 시에서 죽은 쥐들이 길거리에 쌓이기 시작하면서 시작됩니다. 곧이어 사람들도 고열, 구토, 림프선 부종 등의 증상으로 사망하기 시작하고, 보건 당국은 이를 페스트로 판단한 뒤 도시를 봉쇄합니다.

처음에는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 하지만 도시가 폐쇄되고, 점점 늘어나는 사망자와 격리 조치에 의해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의 삶은 고립과 불안 속으로 빠져듭니다. 마치 코로나19 초기의 전 세계 도시들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3. 주요 인물들 –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

『페스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다양한 대응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리외: 주인공이자 의사. 그는 감염과 싸우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인물로, 이성적이고 헌신적인 인간다움의 상징입니다.
  • 타루: 외부인으로, 처음에는 관찰자였지만 리외와 함께 방역 활동에 동참합니다. 그는 윤리적 실천을 중시하며 무신론적인 구원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 그랑: 평범한 시청 공무원이지만, 묵묵히 문서작업을 하고 의용대 활동에도 참여합니다. 그의 평범함 속에는 인간의 위대함이 숨어 있습니다.
  • 파늘루 신부: 초반에는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해석하지만, 이후에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복잡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 코타르: 밀수와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는 인물.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만, 결국 사회의 불안정성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목격했던 수많은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4. 부조리와 싸우는 방법 – 참여, 연대, 책임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세상은 본래 의미가 없고 부조리하다”는 부조리 철학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그 속에서도 윤리적 책임과 연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리외는 신을 믿지도 않고 세상의 정의도 확신하지 않지만,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들을 치료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성공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 일이라서 하는 겁니다.”

이는 결과 중심의 논리를 벗어난 실존적 윤리의 실천이며, 우리 모두가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묻는 대목입니다.


5. 죽음, 고통,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

소설은 도시의 봉쇄가 해제되고 페스트가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카뮈는 **“페스트균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암시를 남깁니다. 즉, 악과 고통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현실 인식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연대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야말로 카뮈가 우리에게 남긴 윤리적 메시지입니다.


6. 걷고 난 후: 지금, 다시 읽는 『페스트』

『페스트』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 우리는 고통과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그 안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 윤리적 책임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감당해야 하는 걸까?

이 책은 단지 과거의 재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처한 현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기후위기, 팬데믹, 전쟁과 불평등, 혐오와 분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망이나 방관이 아니라, 작은 실천과 연대의 자세일지도 모릅니다.


📌 함께 기억하고 싶은 문장

“사람들이 페스트와 싸우는 방법은 오직 성실함뿐입니다.”
– 리외

“나는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함께 있을 겁니다.”
– 타루


🧭 당신의 ‘페스트’는 무엇인가요?

책을 덮은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삶에서 맞서 싸워야 할 ‘페스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불의일 수도, 스스로의 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페스트』는 그것을 직시하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감당하자고 말합니다.


🔖 책 정보

  • 제목: 『페스트』
  • 저자: 알베르 카뮈
  • 출간: 1947년
  • 국내 출판: 열린책들, 민음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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