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진실의 검

계곡 전체를 감싸던 룬의 빛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며 드라켄발 전역에 울려 퍼졌다. 마치 대지와 하늘이 동시에 떨리는 듯한 진동이 퍼지고, 아렌의 손에 쥐어진 기억의 검은 은은한 빛을 내며 맥박치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무기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진실의 증표였다.
왕의 기사단은 아렌을 이단으로 체포하라는 명을 받고 계곡을 에워쌌다. 그러나 검을 뽑지 못한 채 서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벨루미아의 빛에 휩싸인 룬의 울림에 마음을 빼앗긴 듯, 섣불리 발을 내딛지 못했다.
“검을 들라!” 제르만 왕자—칼란의 형, 드라켄발의 실질적인 후계자—가 말을 타고 등장했다. 그는 전신을 덮는 검은 갑옷을 입고, 붉은 안광이 스민 투구 너머로 아렌을 노려보았다. “이단자 아렌! 신의 이름을 빌미로 왕국의 질서를 흔들고, 마법으로 병사들을 현혹했으니, 그 죄에 따라 처단하겠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렌이 조용히 응수했다. “진실은 강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부될 수도 없지요. 당신이 외면한 그 기억은, 지금도 이 대지 위에 살아 있습니다.”
제르만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그럼 널 베어 진실의 끝을 보겠다.”
결투가 선언되었다. 드라켄발 왕가의 전통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걸린 싸움은 공개 결투로 결정될 수 있었다. 진실을 거부하는 왕자와, 진실을 품은 중재자. 둘은 고대의 돌 제단 위에서 마주 섰다.
아렌의 기억의 검은 가볍고 투명했다. 무게가 없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과 정서, 그리고 잊힌 이름들의 울림이 담겨 있었다. 반면, 제르만의 검은 육중하고 날이 붉었다. 그것은 힘의 상징이자, 피로 세운 왕권의 형태였다.
전투는 시작되었다. 제르만의 첫 일격은 대지를 깨울 정도로 강력했지만, 아렌은 그 공격을 피하며 검의 선을 그었다. 그의 검은 상처를 입히지 않았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고대의 룬이 떠올랐다. 마치 기억이 피어나는 궤적처럼.
“이 검은 증오를 자르지 않는다.” 아렌이 말했다. “이 검은 진실을 기억하게 한다.”
제르만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넌 약한 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아렌이 그은 궤적에서 피어난 룬은 제르만의 방어구를 서서히 무력화했고, 그의 정신 안으로 잊었던 기억들이 밀려들었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눈물, 어린 시절 동생 칼란과 함께 웃던 나날들… 그리고 신전에 헌정된 이름 없는 검.
제르만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다, 검을 멈췄다. 눈동자에 혼란이 스쳤다. “이건… 뭐지…?”
아렌이 마지막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찌르지 않았다. 단지 검의 끝을 제르만의 가슴 앞에서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 순간, 제르만의 붉은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계곡은 고요해졌다. 왕의 기사단도 무기를 거두었다. 칼란이 앞으로 나서며 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제르만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물었다.
“이것이… 진실의 무게인가.”
아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기억의 검을 수납하며, 벨루미아를 들어 보였다. 일곱 번째 잎이 움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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