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이름의 각성

아렌은 한동안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아란티우스’—이름 하나가 과거의 어둠을 뚫고 지금 이 순간, 벨루미아의 빛 속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엔 여전히 신의 서고가 천천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부유하는 기억들은 마치 아렌에게 말을 거는 듯, 천천히 그 주위를 돌고 있었다.
“아렌.”
레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괜찮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
어릴 적 우연히 봤던 무덤 뒷면의 글자—그저 오래된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던 단어가 지금은 하나의 운명처럼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 그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름, 아란티우스는…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서약의 상속이야. 신과 인간이 함께 맺은 마지막 계약, 그 수호자의 이름.”
라움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서약의 혈맥,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의 계승자라는 말이군요.”
이안 경도 조용히 한 발 다가왔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왜 벨루미아가 당신에게 반응했는지, 왜 기억의 파동이 당신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는지도.”
린벨 백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이름은 오래전 왕국들의 비밀 의회에서조차 언급이 금지된 명칭이었소. 신들의 계약서에 서명한 유일한 인간의 이름이었으니까.”
아렌은 침묵했다.
벨루미아는 그의 손에서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고, 마치 그 이름을 인정하듯 작은 파동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신의 서고 한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마법진이 반응하고 있었고, 공간 너머로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고대의 기억이 봉인된 공간, 즉 ‘계약의 방’이었다.
“이건… 신과 인간의 최후의 서약이 보관된 곳입니다.”
라움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렌은 앞장서 걸어 들어갔다.
내부는 원형의 방이었고, 중심에는 반투명한 수정을 품은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세 개의 문장이 떠 있었다.
‘신’, ‘인간’, 그리고… ‘중재자’.
“중재자…” 레나가 속삭였다.
“그게 바로 아란티우스, 당신이 지닌 이름의 본질이야.”
아렌이 제단에 손을 대자, 세 문장은 하나로 합쳐졌고, 눈앞에 거대한 기억의 장면이 열렸다.
신과 인간이 서약을 맺던 장면, 아란티우스가 칼을 땅에 꽂고 외친 마지막 맹세.
그리고, 그 맹세에 응답하듯 벨루미아의 꽃잎이 하늘에서 피어나는 장면.
그 순간, 벨루미아가 다시 한 번 빛을 폭발적으로 내뿜었다.
그 빛은 아렌의 몸을 감쌌고, 그의 등 뒤에 커다란 문양이 떠올랐다.
그것은 세 개의 서약 문장이 합쳐진 ‘계약의 인장’이었다.
“이제… 나는 기억의 수호자이자, 진실의 중재자가 된 거야.”
아렌이 낮게 말했다.
그러나 그 찰나, 공간이 흔들렸다.
신의 서고 바깥에서 마법진이 붕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벨루미아의 빛이 퍼진 순간, 린벨 성 너머 수많은 마법탑들이 동시에 반응하며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파동은…”
레나가 숨을 삼켰다.
“다른 왕국들도 이 진실에 반응하고 있어.”
이안 경이 입을 굳게 다물며 말했다.
“이제 시간이 없어. 이 진실을 받아들일 자와, 막으려는 자가 동시에 움직일 거야.”
아렌은 마지막으로 수정 위에 손을 얹었다.
거기엔 신의 메시지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새겨져 있었다.
“진실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