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진실을 겨눈 눈
지아드가 도착했을 때, 린벨 성은 이미 전운으로 물들어 있었다.
병사들은 각 출입문을 봉쇄하고 있었고, 경비병들은 긴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지아드는 그런 긴장감 따위에 개의치 않는 듯 당당하게 회랑을 걸었다.
그의 망토 끝은 흙먼지를 스치며 흔들렸고, 그 눈빛은 얼음처럼 날카로웠다.
아렌은 밀실의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린벨 백작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아드를 맞이했다.
“지아드. 이 시각에 직접 오다니 무슨 일이지?”
“백작님께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지아드는 예를 차렸지만, 그 자세는 결코 굽혀지지 않았다.
“신전이 불탔고, 불길한 방문자들이 도착했으며… 이안 경까지 예상보다 빠르게 린벨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우리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네.”
지아드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실이라… 대체 누구의 진실을 말씀이십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아렌을 바라보았다.
“이 낯선 자가 들고 온 꽃 하나에, 수십 년 쌓아온 린벨의 기틀을 맡기시려는 겁니까?”
아렌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건 단지 꽃이 아닙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품은 유산이며, 그 증표입니다.”
지아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그 신들은 지금 어디 있지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현재이고, 백성이고, 린벨의 안위입니다. 헛된 전설에 기댈 때가 아닙니다.”
린벨 백작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럼 그 진실을 직접 보게 하지. 지아드, 당신도 벨루미아를 통해 진실을 본다면, 판단은 더 분명해질 걸세.”
지아드는 망설이다가 결국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보여주십시오.”
아렌은 벨루미아를 그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꽃은 다시 한 번 보랏빛으로 피었고, 회랑의 공기가 일순간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영상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억의 영상이 완전히 펼쳐지기도 전에, 벨루미아가 미세하게 떨리며 빛이 흔들렸다.
영상이 일그러지고, 어둠 속에서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건…?”
레나가 놀랐다.
“누군가… 이 기억을 방해하고 있어요.”
라움이 급히 주변을 살폈다.
지아드가 손을 뒤로 젖혔다.
그의 손끝에는 희미한 마법진의 흔적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벨루미아가 빛을 멈추고 어둠이 밀려왔다.
“당신은 진실을 보는 걸 거부한 겁니까?”
아렌이 외쳤다.
지아드는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거짓을 보는 걸 거부한 것이다. 이 꽃은 신이 아닌, 누군가의 도구일 뿐. 린벨의 질서를 흔드는 자들을 나는 용납하지 않겠다.”
그의 말과 함께, 호위병들이 문 밖을 에워쌌다.
성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했다.
린벨 백작은 천천히 일어섰다.
“지아드…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을 내 자문관 직위에서 해임하겠다.”
지아드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 선택이, 곧 당신의 몰락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함께 무너지지 않도록 잘 붙들어 주게.”
백작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렌은 벨루미아를 품에 안았다.
꽃은 다시 고요히 빛났지만, 방금 전의 혼란은 그 빛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