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율을 깨다》

제28장. 현실로 돌아오다

digital-nagane 2025. 4. 9. 10:06
반응형

 

 

 

기억의 방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아렌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빛으로 가득했던 공간은 점점 희미해졌고, 마지막으로 벨루미아의 꽃잎이 반짝이며 잔잔한 파동을 남기고는 그의 손 안에서 빛을 감췄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다시 황금 신전의 중앙 홀에 서 있었다.

바닥에 남아 있던 문양은 사라지고 있었고, 주변 공간은 한층 더 조용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방금 전의 일이 오랜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돌아왔군.”

 

칼릭의 목소리가 울렸다.

레나는 여전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뭔가 달라진 것 같아.”

 

아렌은 조심스럽게 손에 쥔 벨루미아를 바라보았다.

꽃잎은 여전히 보랏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이전처럼 강하게 빛나진 않았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고요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기억 속에서 본 것들…”

 

아렌은 말을 멈췄다.

머릿속에 남은 조상의 말과 신들의 경고, 배신의 장면들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진실을 알게 된 이상, 그는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 어쩔 거지?”

 

칼릭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와 동시에 믿음이 담겨 있었다.

 

아렌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전의 벽면에는 여전히 신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를 타고 흐르는 바람은 한층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한번 벨루미아를 가슴에 품고 입을 열었다.

 

“세상은 아직 이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하지만… 숨긴다면 또 다른 배신이 될 거야. 우린 이걸 세상에 전해야 해. 적어도… 누군가는 진실을 알아야 해.”

 

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걸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 질문에 아렌은 잠시 침묵했다.

그도 두려웠다.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귀족들이 지배하는 현재의 체계를 유지하려는 세상 앞에서 이 진실은 불편한 진실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그때, 멀리서 진동음이 들려왔다.

신전의 입구 쪽에서 희미한 빛이 번쩍였고, 곧 이어지는 발소리가 회랑을 따라 퍼져나갔다.

“누군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 레나가 경계하며 몸을 낮췄다.

아렌은 고개를 들고 신전의 출구를 바라보았다.

이 고대의 장소가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들은 이제 진실을 손에 쥐고, 그것을 지켜내야 할 책임을 지닌 자들이었다.

 

“이제 나가자.” 아렌이 말했다.

“우리를 기다리는 세상으로.”

 

세 사람은 조용히, 하지만 단단한 발걸음으로 신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등 뒤로 고대 신전의 문이 천천히 닫히며, 마지막으로 바닥의 문양이 미약하게 빛을 내뿜었다.

마치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