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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나그네] 꽃 감성 시리즈 ③ – 수선화 앞에서 나를 마주하다

digital-nagane 2025. 4. 1. 20:26

 

길가에 수선화가 피었다.
누군가 가꾼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풍경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한 숲길 한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담담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 앞에 앉았다.
수선화는 흔히 '자기애'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한 이야기.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청년이 수선화가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신화보다, 수선화 그 자체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다.

자기애라는 말은 어쩌면 오해받기 쉬운 말이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수선화 앞에서 나는 그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수선화는 화려하지 않다.
튤립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장미처럼 풍성하지도 않다.
하지만 고개를 곧게 들고, 단정하게 피어 있다.
바람이 불면 조금 흔들리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햇살이 비치면 그 빛을 머금고 고요하게 선다.

그 단단한 고요함이,
그 차분한 자존감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너는 너여서 충분해.”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렀다.
요즘의 나는 너무 많은 기준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더 잘해야 한다, 더 보여줘야 한다, 더 의미 있어야 한다는 조급함.
하지만 수선화는 아무런 ‘더’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피어 있었고,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의 소음이 너무 커서일지도 모른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멈춰 있는 것 같고,
그럴 때면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수선화는 초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눈부셨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피어남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피어남이었다.

그 앞에서 나는 나를 마주했다.
어릴 적 나,
서툴지만 정직했던 나,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려 했던 나.

잊고 지냈던 그 마음이, 수선화 한 송이 앞에서 되살아났다.


나그네의 시선

자기애는 이기심이 아니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믿는 일.
그건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뿌리 같은 것이다.
수선화처럼 조용히 피어나되,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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