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책으로 걷는 시간

《모비 딕》 – 바다를 향한 집착, 인간을 향한 질문

digital-nagane 2025. 6. 9. 20:58

📘 책으로 걷는 시간 ㉛


1. 걷기 전에

“Call me Ishmael.”
“나를 이슈메일이라 부르시오.”

이 짧은 문장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이 한 줄이 바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광기 어린 복수, 인간의 숙명으로 우리를 이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고래잡이를 다룬 해양소설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내면, 문명과 자연, 신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 겹겹이 쌓여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래를 쫓는 일이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추적 속에서, 독자는 끊임없이 묻는다.
“왜 인간은 모비 딕을 쫓는가?”


2. 함께 걷기

『모비 딕』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자인 이슈메일은 삶에 권태를 느끼고 고래잡이 배인 피쿼드호에 승선한다.
그는 곧 선장 에이해브(Ahab)*와 마주하게 된다.

에이해브는 하얀 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뒤,
그 고래를 향한 광기 어린 복수심으로 배를 이끈다.
그는 승무원 전체를 복수에 동참시키고,
바다를 떠도는 다른 배들과도 엇갈리며 마침내 고래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끝은 파멸이다.
모든 승무원은 바다에 삼켜지고,
이야기를 시작한 이슈메일만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기록한다.

📌 이 소설은 단순한 항해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에 사로잡히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며,
무엇을 잃는지에 대한 문학적·철학적 추적기다.


3. 에이해브 – 집착이라는 비극

에이해브는 비극적인 영웅이다.
그는 단순히 다리를 잃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존엄, 믿음, 세계에 대한 질서감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선 모비 딕을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비 딕은 단순한 고래가 아니다.
그는 자연 그 자체이며,
신의 침묵이며,
해석되지 않는 세계의 상징이다.

📌 에이해브는 설명할 수 없는 것과 싸우려 했다.
그래서 그 싸움은 처음부터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4. 바다 – 무의미와 진실의 공간

『모비 딕』 속 바다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측정할 수 없는 혼돈의 상징이다.

  • 바다는 심연이며,
  • 고래는 알 수 없는 절대자다.

이소벨 같은 다른 선원들은 고래를 생계 수단으로 보지만,
에이해브는 고래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지워버린 악으로 간주한다.

📌 바다는 인간이 감히 지배할 수 없는 곳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다시 작은 존재로 돌아간다.


5. 이슈메일 – 생존자이자 관찰자

책의 화자인 이슈메일은 행동하지 않는 관찰자다.
그는 선장의 명령에 따르지만,
한 발짝 떨어져 모든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결국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이야기를 기록하게 된다.

그는 에이해브의 광기와 인간의 집착,
그 파국적 결과를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증인이다.

📌 그의 생존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야기를 전달할 자”로서 살아남는다.


6. 책이 묻는 것들

『모비 딕』은 단순히 해양 소설, 고전, 서사시 그 이상이다.
책을 읽는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 인간은 왜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가?
  • 설명되지 않는 세계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 집착과 사명감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 신은, 운명은, 자연은 결국 무엇인가?

📌 책이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은 질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다.


7. 함께 걸은 후에

《모비 딕》은 우리 안의 에이해브를 마주하게 만든다.
우리도 삶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그 정체조차 모른 채 분노하거나,
집착하거나,
쫓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바다는 늘 말없이 출렁일 뿐이다.
우리는 때로 싸워야 하고,
때로 포기해야 하며,
때로는 살아남아 증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슈메일처럼
“이야기하는 자”로서 다음 걸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