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는 다섯 개의 궁궐이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그리고 마지막, 가장 조용히 존재하는 궁궐, 경희궁(慶熙宮).
아마 서울 시민들조차 경희궁을 직접 가본 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비해 관광객의 발길도 뜸하고, 사진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않는 곳.
그러나 바로 그 조용함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경희궁 산책은 서울 한복판에서 과거로 슬며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이 된다.
이번 주말, 한적한 마음을 안고, 경희궁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경희궁의 간단한 역사, 알고 걷기
경희궁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창건되어 인조, 효종, 숙종, 영조 등 여러 왕들이 머물렀던 조선시대 후반기의 법궁 중 하나였다.
‘경희’라는 이름은 ‘경사롭고 화평하다’는 뜻으로, 새로운 시대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 재건이 계속되면서, 경희궁은 종종 보조 궁궐의 위치로 밀려났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전각이 훼손되었고, 1980년대에 이르러 복원된 것이 지금의 경희궁이다.
그럼에도 경희궁은 단단한 침묵을 품고 있다.
궁궐의 본질은 화려함이 아니라 품격이고, 경희궁은 서울 도심에서 오히려 가장 ‘궁궐스러운 고요’를 간직하고 있다.
경희궁 산책 코스 추천
📍 입장: 광화문역 7번 출구 또는 서대문역 4번 출구
경희궁은 무료로 입장 가능하며, 관광객이 많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에서 산책하기 좋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흥화문(興化門)이 보인다.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현재는 경희궁길을 사이에 두고 복원되어 있다.
📍 숭정문 – 숭정전 – 태령전
- 숭정전(崇政殿): 경희궁의 정전으로 왕이 공식 행사를 치르던 중심 건물.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 태령전(泰寧殿): 왕의 초상화를 모셨던 전각으로, 깊고 묵직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 이곳에 들어서면 바깥의 소음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든다.
📍 조용한 벤치길
숭정전을 지나 옆길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는 작은 벤치 구역이 나온다. 주변엔 단풍나무, 소나무, 은행나무들이 계절마다 다른 색을 뽐내며, 궁궐이라는 공간을 더 부드럽게 만든다.
이 길은 서울 도심 속에 있음에도, 마치 다른 시대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책하며 느낀 몇 가지 단상
🌿 "소박한 것의 힘"
경복궁이 크고 장엄하다면, 경희궁은 작고 단정하다.
산책하는 동안 그 소박함이 오히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복잡한 것들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경희궁은 ‘덜어냄’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 "계절을 품은 궁궐"
가을이면 낙엽이 붉게 물들고, 봄엔 개나리와 벚꽃이 궁 안에 피어난다.
겨울의 경희궁은 또 다르다. 흰 눈이 쌓인 숭정전 앞 마당은 마치 흑백사진처럼 고요하다.
👣 "나를 걷는 시간"
혼자 조용히 걷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생각이 복잡할 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경희궁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문득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경희궁 +α 즐기기
경희궁은 단순히 궁만 걷고 나오기엔 아쉬운 곳이다.
주변에 함께 들르면 좋은 장소도 많아, 도심 속 원데이 힐링 코스로도 추천할 수 있다.
1.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서편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서울의 근현대사를 사진과 모형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아이와 함께 방문해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2. 정동길 산책
경희궁에서 나와 덕수궁 돌담길까지 이어지는 정동길을 걸어보자.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들과 함께 걷는 이 길은 서울에서 가장 클래식한 산책 코스 중 하나다.
3. 카페 & 브런치
경희궁 맞은편에는 아늑한 분위기의 한옥 카페나 갤러리형 브런치 카페들이 있다.
산책 후 따뜻한 차 한 잔, 혹은 크로플과 커피 한 잔은 이 산책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좋다.
실용 정보 (2025년 6월 기준)
- 위치: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길 20
- 운영 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무)
- 입장료: 무료
- 대중교통: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 도보 5분
※ 계절별 행사나 전시가 있을 수 있으니 방문 전 홈페이지 확인 권장
마무리 – 고요한 걸음이 필요한 날엔
‘궁궐’이라고 하면 대개 화려한 왕의 이미지부터 떠오르지만, 경희궁은 그렇지 않다.
이곳은 시간의 그림자와 바람, 빛의 움직임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복잡하고 빠른 일상 속에서 아주 천천히 걷고 싶은 날, 말없이 위로가 되어주는 곳.
경희궁 산책은 그 자체로 마음의 휴식이다.
이번 주말, 한 번쯤은 이 조용한 궁궐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어쩌면, 아주 오래전의 시간과 지금의 내가 조용히 마주칠지도 모른다.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늘공원 가보셨나요? (9) | 2025.06.09 |
---|---|
🍃 사계절 걷기 좋은 길, 안산둘레길 나들이 (7) | 2025.06.08 |
주말 공원 산책하기 – 걷는다는 것의 위로 (4) | 2025.06.08 |
🌹 6월, 장미가 예쁜 곳 어디일까? (7) | 2025.06.07 |
🚙 서울 근교 차박하기 좋은 곳 추천 (4) | 2025.06.07 |